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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도시를 바꾼다

건축,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장

건축이 도시를 바꾼다. 새 건물이 들어서고, 낡은 골목이 정비되고, 오래된 창고가 카페로 바뀐다. 그 변화는 대부분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런데 그 발전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잘 묻지 않는다.

서울은 지금도 바뀌고 있다. 재개발 현수막이 붙은 골목이 있고, 공사 가림막 너머로 크레인이 올라가는 동네가 있다.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건축이 도시를 바꾸는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젠트리피케이션, 건축에서 시작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추상적인 경제 현상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매우 물리적인 과정이다. 건물이 바뀌고, 간판이 바뀌고, 골목의 재질이 바뀐다. 낡은 벽돌 건물이 헐리고 유리와 콘크리트로 된 새 건물이 올라선다. 그 건축적 변화가 동네의 성격을 바꾸고, 동네의 성격이 바뀌면 그곳에 살고 일하던 사람들이 떠난다.

1964년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가 이 현상에 처음 이름을 붙였다. 런던의 낡은 노동자 주거지에 중산층이 유입되면서 원주민이 밀려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같은 구조가 서울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건축 트렌드

모던 건축

익선동 — 한옥이 상품이 된 동네

익선동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밀집 지역 중 하나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도시형 한옥들이 좁은 골목을 따라 늘어서 있다. 오랫동안 저소득층 주거지로 남아 있었고, 재개발 논의가 수십 년간 반복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2010년대 중반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낡은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식당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건물 구조는 한옥이지만 내부는 현대적으로 꾸민 공간들이 입소문을 탔다. 사람들이 몰렸고, 임대료가 올랐다. 처음 그 골목을 채웠던 저렴한 가게들과 오래된 주민들은 떠났다.

지금 익선동의 건축은 보존과 소비 사이 어딘가에 있다. 한옥의 외형은 유지되고 있지만 그것은 역사적 맥락보다는 ‘레트로 감성’이라는 소비 코드로 소비된다. 건축이 보존된 것인지, 포장된 것인지는 구분하기 어렵다.

성수동 — 공장이 사라지고 브랜드가 들어온 자리

성수동은 1970~8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 지대였다. 수제화 공장, 인쇄소, 철공소가 밀집해 있었고, 낡은 붉은 벽돌 건물들이 골목을 채웠다. 산업이 쇠퇴하면서 공장들이 비기 시작했고, 빈 건물들은 낮은 임대료로 남았다.

그 낮은 임대료가 변화의 시작이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젊은 작가와 디자이너들이 공장 건물을 작업실로 쓰기 시작했다. 붉은 벽돌과 높은 천장, 날것의 질감이 ‘힙한 공간’으로 재해석됐다. 대형 브랜드들이 팝업 스토어와 플래그십 매장을 열기 시작했고, 성수동은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권이 됐다.

건축적으로 보면 성수동의 변화는 흥미롭다. 공장 건물의 외형을 그대로 살린 리노베이션이 많다. 철제 구조물, 노출 콘크리트, 오래된 창틀이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된다. 그런데 그 건물들이 담고 있던 노동의 역사는 지워진다. 공간은 남았지만 맥락은 소비됐다.

건축

세운상가 —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의 실험

세운상가는 1968년 준공된 서울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약 1킬로미터를 잇는 거대한 구조물로, 당시에는 최첨단 건축으로 불렸다. 설계자는 건축가 김수근이었고, 건물 위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공중보행로가 핵심 개념이었다. 서울의 남북을 건물 위에서 연결한다는 발상이었다.

현실은 달랐다.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세운상가 일대는 쇠퇴했다. 한때 전자 부품과 기계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점차 낙후 지역으로 분류됐다. 2000년대 들어 전면 철거 후 공원화 계획이 추진됐다. 그 계획은 결국 무산됐고, 2017년 도시 재생 방식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공중보행로가 복원됐고, 낡은 상가에 청년 제조업체와 문화 공간이 입주했다.

세운상가의 사례는 건축 보존과 도시 재생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철거 대신 재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 상인들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다른 문제다. 건물이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 안의 생태계까지 보존된 것은 아니다. 도시 재생이라는 개념이 건축적 보존에 집중할 때 놓치는 지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

건설

건축이 기록하지 않는 것들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의 과정에서 건축은 주로 새로 짓는 쪽에 집중된다. 무엇이 사라졌는지는 기록으로 잘 남지 않는다. 헐린 건물의 도면은 없고,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도 없다.

서울 곳곳에 재개발이 완료된 아파트 단지가 있다.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건축은 도시를 바꾸지만, 그 변화가 무엇을 지웠는지는 건축 스스로 기록하지 않는다.

도시의 변화를 읽는 방법 중 하나는 건물을 보는 것이다. 어떤 재료로 지어졌는지, 어떤 시대의 양식인지, 주변과 어떻게 어울리거나 충돌하는지. 그 건축적 단서들이 그 동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는지를 말해준다.

프로젝트 2496은 그런 단서들을 모으는 기록이다. 전문적인 분석이 아니라 걷고 올려다보고 궁금해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건축이 도시를 바꾸는 방식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